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란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하는데, 여기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의 소재 및 증명의 정도, 그리고 그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방법과 판단의 기준에 대한 판결이 있어 검토해 보게 되었습니다. 해당 사건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다 희귀질환이 생긴 근로자의 직업성 질병에 대한 인과관계 판단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판결출처 : 대법원 2015두3867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사안의 개요
이 사건의 원고는 LCD 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인데 입사 후 3년이 지나 21세 때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측에서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연구원은 해당 근로자의 작업조건과 업무내용이 다발성 경화증과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업주도 LCD 모듈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에 관한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공단은 이를 기초로 원고의 다발성 경화증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신청에 대해 불승인 처분을 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을 피고로 하여 요양불승인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청구를 기각하였고, 대법원까지 가서 결과가 바뀐 사건입니다.
(다발성 경화증이란 뇌, 척수, 시신경을 포함하는 중추 신경계에 발생하는 만성 신경면역계 질환입니다.)
대법원의 판단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ㆍ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ㆍ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ㆍ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ㆍ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석
이 판결 이전에 대법원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비교적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했었습니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기 위한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원칙적으로 근로자측에 있다고 하면서도, 재해근로자를 위하여 인과관계를‘간접적인 업무관련성’까지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해당 근로자가 직접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직업성 질병의 발병, 악화에 관련이 있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소에 따라 업무상 질병이라고 인정해 준 것입니다.
이후 판결들도 업무상 질병에 관하여 근로복지공단측의 증명책임 범위를 확대하여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고 있는 경향이며, 이는 재해를 입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존권 보호를 위하여 진일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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